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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최종회> 실크로드 여행 회고, 그리고 귀국


우리 일행은 완주 기념으로 호텔 뒤쪽의 한식당 '고려정'에서 자축 파티를 했다. 이슬람권은 돼지고기를 팔 수 없는데, 한국식당 '고려정'에서 삼겹살 안주에 한국 소주와 맥주를 오랜만에 마음껏 먹었다. 내가 자축 파티 비용을 냈다.

아내는 여행 도중에 건배사로 외쳤던 "가자, 이스탄불" 대신, "왔다, 이스탄불"로 센스있게 바꿔서 박수를 받았다. 귀국하기 전날 '고려정' 식당에서 석별 식사를 할 때 아내는 '추억이 많은 사람이 부자다'라는 말로 2달 동안의 동고동락을 회고한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자아 성취, 남이 알아주지 아니해도 나만의 내밀한 경험을 만든 것은 인생의 소중한 재산이다. 나와 아내는 '추억 부자'가 되었음에 감사한다.

2024년 7월 2일 장맛비가 심하게 내리는 날 아침 서울을 출발, 동해항으로 갈 때 영동고속도로 자동차 안에서 아내는 가기 싫다고 울먹이고, 옆 좌석에 있는 나 역시 쓸데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지 걱정했던 일이 생생하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 일행의 유라시아 여행 총 경로. [사진=윤영선]
윤영선 전 관세청장 일행의 유라시아 여행 총 경로. [사진=윤영선]

블라디보스토크행 카페리 여객선에 차를 싣고, 비 내리는 동해 위에서 25시간 동안 여객선 3등실 객실에서 고생했던 일이 생생한데 드디어 자동차 여행을 무사히 끝냈다. 결혼 40주년, 내 나이 70살 기념의 실크로드 역사와 지리 여행에 아내의 동행에 감사하다.

동해항에서 일행 8명이 처음 만났는데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전생의 인연이다. 김중석 목사님, 강경중 회장님, 오영환 대표님, 이경태 실장님, 현광민 대장님, 윤하경 군이다. 귀국했을 때 친구들은 장기간 여행 중에 부부간에도 싸우는데,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끼리 장거리 여행을 무사히 다녀온 것에 대해 신기하다고 말한다. 귀국해서 친구들이 장거리 여행의 무사 귀환을 축하해주면서 "윤영선, 장가 잘 갔다. 내 아내는 절대로 함께 안 갈 것이다."라며 농담을 했다.

2024년 여름 두 달(7월과 8월) 동안 내 인생의 가장 큰 일탈을 경험했다. 그동안 꽉 짜인 조직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와 느림의 시간을 보냈다. 결혼 40주년 기념으로 시베리아와 실크로드 길을 간다고 했을 때 자녀 등 주위의 모든 사람이 만류했다. 오지에서 갑자기 중병의 발병, 자동차 사고에 대한 염려다. 아내의 목 디스크, 감기, 소화불량, 자동차 고장 등으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나고 보니 고생이 진짜 추억이다. 후진국 국경 직원들의 불친절과 장시간 기다림도 지나고 보니 아름다운 추억이다.

인터넷이 자주 끊기는 시베리아 대초원, 바이칼호수의 청정한 공기, 고비사막의 무한대 지평선, 황량한 타클라마칸 사막, 만년설의 파미르고원, 평화로운 천산산맥 정경, 키질쿰사막 자갈밭 길, 아름다운 코카서스산맥 종단, 아나톨리아 고원 등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광활한 대지에서 내면의 평안함과 영혼의 자유로움, 겸손함, 느림, 고요함, 멈춤을 느꼈다. 장엄한 대자연에 몰입은 잠시나마 심리적 피정(避靜)이었다.

대륙과 대자연의 시간은 직선으로 가지 아니하고 곡선으로 천천히 감을 경험했다. 실크로드 곳곳에 남아있는 우리 조상의 고대 역사 흔적,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 승려 '혜초스님' 자취, 연해주 독립운동가의 유적 등 모두 감동이었다. 대륙성기후, 사막성기후, 스텝기후, 한대 기후 등 척박한 기후를 보면서 온대지역에 사는 것에 감사한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 일행의 유라시아 여행 총 경로. [사진=윤영선]
윤영선 전 관세청장이 귀국 직전 이스탄불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윤영선]

민족 갈등, 종교 갈등, 다언어 사용, 지역갈등, 물 부족, 물류 문제 등 많은 나라가 크고 작은 문제를 갖고 있음을 보았다. 연해주에 살던 17만 명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현장, 현재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50만 명의 고려인 4세, 5세들의 삶의 현장을 잠시 보았다. 고려인 4세, 5세 후손들에 대한 모국의 따뜻한 관심이 요구된다. 이들은 한글을 잊어버렸지만, 모국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넘치고 있다.

공익단체들이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고려인 중고등학생, 대학생 등을 초청하여 모국의 역사, 문화, 한글을 알려주는 사업이 필요함을 느꼈다. 자원 부국인 중앙아시아에 한민족 네트워크 형성을 지원하고,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공급 등 다양한 측면에서 상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4년 8월 27일 인천공항에 아들이 차를 갖고 기다린다. 아내는 정형외과에 가서 목 디스크 치료를 몇 개월 동안 받았다. 나는 지인들에게 강의 요청을 받아서 '시베리아 실크로드' 역사 여행 강의를 가끔 하였다. 실크로드 역사와 지리 여행기를 2024년 9월부터 2025년 8월 말까지 1년 동안 매주 1회씩 신문에 연재하였다. 애정으로 읽어준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여러 지인이 연재가 끝나서 아쉽다는 애정 어린 말씀을 주시며, 여행기를 출간하라고 격려했다.

여행기를 기록으로 남기면 먼 훗날 내 손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것으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자 1,000부를 발행, 안 팔리는 책은 내가 전부 구매하는 것으로 출판사와 협의를 했다. 여행기 때문에 모교인 '서울고등학교'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것도 작은 기쁨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의 과정이다.

'시베리아 실크로드' 역사와 지리 여행을 선택한 것은 내 인생을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만든 작은 전환점이다. 로버트 프루스트 시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며 마친다.

"노란 숲속에 두 갈래로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훗날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회고하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노라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윤영선 전 관세청장 일행의 유라시아 여행 총 경로. [사진=윤영선]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법무법인 광장 고문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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