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홍성효 기자] 유럽연합(EU)이 10월부터 수입 철강의 일반적인 원산지를 넘어 쇳물이 만들어지고 처음 주조된 국가까지 확인한다.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 속에서 제3국을 거친 우회 수출을 추적하고 공급망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국내 주요 철강사는 조강 단계부터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기존에도 고객사에 제공하는 제품검사증명서에 관련 정보를 기재해온 만큼 당장의 수출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2027년부터는 제품검사증명서를 중심으로 증빙 기준이 강화돼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생산 이력을 정확히 연결하는 관리 역량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포항제철소 제 3부두에서 철강제품을 선적하고 있는 모습. [사진=포스코 ]](https://image.inews24.com/v1/4a243175fcaf96.jpg)
1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EU는 이날부터 역내로 들어오는 철강 제품에 ‘멜트 앤드 푸어(Melt and Pour)’ 증빙 의무를 적용한다.
멜트 앤드 푸어는 철강의 원료가 용해돼 쇳물이 되고, 이를 슬래브나 빌릿 등 반제품 형태로 처음 주조한 국가를 뜻한다. 다른 나라에서 압연이나 도금, 절단 등 후속 공정을 거쳤더라도 최초 조강 생산국을 별도로 확인하는 방식이다.
EU, 10월부터 '쇳물 생산국' 증빙…일반 원산지와는 구분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8월31일 철강 수입자가 멜트 앤드 푸어 국가를 입증할 때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확정했다. 10월1일부터 EU로 철강 제품을 수입하는 경우 수입자는 통관 신고 과정에서 해당 철강이 어느 국가에서 녹여지고 주조됐는지를 신고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빙을 제출해야 한다. 적용 대상은 EU 철강 규정의 관리 품목이다.
가장 기본적인 증빙자료는 밀 테스트 인증서(Mill Test Certificate·MTC)다. 국내에서는 제품검사증명서나 품질시험증명서 등으로도 불린다. MTC에는 조강 생산국과 제품의 생산 단위를 식별할 수 있는 Heat No.가 포함돼야 한다.
MTC에 두 정보 가운데 하나가 빠져 있거나 MTC를 제출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당분간 다른 서류를 활용할 수 있다. 인보이스와 납품서, 품질증명서, 구매계약서, 공급업체 장기신고서, 원가·생산자료, 수출국 세관서류, 상업 서신 등이 보완자료 또는 단독 증빙으로 인정된다.
이번 제도는 제품이 마지막으로 가공된 국가를 따지는 일반 원산지 판정과 구분된다. 제3국에서 생산한 조강을 다른 나라에서 단순 가공한 뒤 가공국 제품으로 수출하는 경우에도 실제 쇳물이 만들어진 국가를 확인하기 위한 장치다.
EU 집행위는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에 따른 무역 전환과 규제 우회를 막고, 수입 철강의 생산 이력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멜트 앤드 푸어 기준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EU 철강 규정은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무관세 수입 쿼터는 연간 1830만톤이며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50%의 관세가 부과된다. 멜트 앤드 푸어 증빙은 쿼터·관세 제도의 집행력을 높이기 위한 추적성 요건이다.
![포항제철소 제 3부두에서 철강제품을 선적하고 있는 모습. [사진=포스코 ]](https://image.inews24.com/v1/e8756e7ba032af.jpg)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기존 생산·서류체계로 대응"
국내 주요 철강사는 새 제도 때문에 생산공정을 바꾸거나 별도의 증빙체계를 처음부터 구축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포스코는 고객사에 제공하는 MTC에 조강국과 Heat No.를 이미 기재하고 있다. 기존 서류를 통해 제품의 생산 이력을 확인할 수 있어 멜트 앤드 푸어 의무화가 유럽향 판매나 생산계획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제철도 쇳물을 만드는 조강 단계부터 국내에서 생산하는 일관제철 공정을 갖추고 있어 증빙 부담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제도가 처음 시행되는 만큼 회원국별 세관의 서류 확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실무 문제가 나타나는지는 지켜볼 방침이다.
동국제강 역시 국내 전기로에서 철스크랩을 녹여 조강부터 완제품까지 생산한다. 조강 생산국이 명확한 만큼 통관 과정에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관련 증빙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동국씨엠은 냉연제품 생산에 필요한 열연강판 등 원재료 일부를 외부에서 구매한다. 다만 대부분 국산 원재료를 사용하고 있어 생산 이력이 확인되는 국내 물량을 유럽향 제품에 우선 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KG스틸도 EU가 요구하는 원산지·생산 이력 관련 서류를 제출해 현지 통관에 차질이 없도록 대응하고 있다.
철강협회 "기존 서류 활용 가능…당장 부담 크지 않아"
한국철강협회도 제도 시행에 따른 단기 부담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국내 철강사가 수출 과정에서 품질과 생산 이력을 증명하기 위해 MTC와 거래서류 등을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수입 신고 의무의 주체는 EU 현지 수입자지만 국내 수출기업도 통관에 필요한 증빙자료를 정확하게 제공해야 한다. MTC에 조강국과 Heat No.가 빠져 있더라도 1년 동안은 인보이스나 납품서, 계약서 등으로 보완할 수 있어 초기 대응 여력도 있다는 설명이다.
![포항제철소 제 3부두에서 철강제품을 선적하고 있는 모습. [사진=포스코 ]](https://image.inews24.com/v1/e532fa2e5aed60.jpg)
문제는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7년 10월 이후다. 그때부터 인보이스와 납품서 등은 MTC를 보완하는 자료로만 인정되며 단독 증빙으로 사용할 수 없다. MTC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MTC에 필수 정보가 빠져 있으면 통관 과정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조강부터 완제품까지 직접 생산하는 일관제철사와 전기로 업체는 상대적으로 대응이 쉽다. 반면 해외나 여러 공급업체에서 반제품·원재료를 구매해 추가 가공하는 업체는 조강 생산국과 Heat No.를 최종 제품까지 정확히 연결해야 한다.
EU의 이번 조치가 당장 국내 철강사의 유럽향 수출 물량이나 생산구조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철강 통상규제가 관세와 쿼터를 넘어 생산 이력 확인으로 확대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변수는 제도 시행 초기 EU 회원국별 통관 실무가 얼마나 일관되게 정착하는지, 국내 업체가 원재료 공급사까지 연결된 추적체계를 얼마나 정교하게 갖추는지다. 2027년 MTC 중심의 증빙체계가 본격화하면 가격과 품질뿐 아니라 공급망 정보를 증명하는 능력도 유럽 시장 경쟁력의 일부가 될 전망이다.
/홍성효 기자(shhong082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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